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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얼과 혼이 스며든 이천오층석탑

우리 강산에서 천년 이상을 선조들의 얼과 혼이 스며든 이천오층석탑이 현해탄을 건너 낯설은 일본땅에서 고국의 이천으로 귀향을 고대하면서 외롭게 서 있습니다.

상단 이미지

천년의 얼과 혼이 담긴 이천오층석탑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우리 조상들의 역사와 혼이 깃들어 있는 문화재를 차별하지 않고 보호할 배타적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우리 조상의 피땀어린 정성이 담겨 있는 이천오층석탑을 보호할 권리와 의무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현재위치

수탈과정

이천오층석탑 관련 조선총독부 ↔ 오쿠라문화재단

1) 오쿠라 슈코칸 이사 사카타니 요시로의 서한 필사(제 11회 고적조사위원회)

(1) 번역본
숙계. 더운계절 더욱 건강하시고 번영하시기를 삼가 아룁니다. 지난번 찾아뵈었을 때에는 오래간만에 여러 가지 말씀을 들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오쿠라 남작의 의뢰로 오쿠라슈코칸 부지 내에 건설할 목적으로 조선에서 역사가 있는 고석탑 한기를 양수하고 싶은 뜻을 은밀히 원하였던 바, 그 후 오쿠라 남작에게 몰래 알려준 일도 있어 그 선정을 위하여 전문의 모 대학교수에게 의뢰하였던 바, 전년 슈코칸 부지 내에 이설한 경복궁 내의 건물 자선당 옆에 어울리는 것은 평양 정차장 앞에 있는 6각 7층 석탑이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함에 곧 경성 하라 가츠이치로부터 총독부의 계원되시는 분에게 직접 신청하도록 시켰사오니 아무쪼록 잘 보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행히 어[허가]하여 주신다면 앞서의 건물과 함께 동도에 있어서 조선의 고건축물의 연구하는 일단이 될 것이며 학술상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사료됩니다. 위 부탁 말씀을 드리며 수고하십시오. 경구 다이쇼7년(1918) 7월 21일 사카타니 요시로 하세가와 백작 각하
(2) 원본
필사 원본 1
필사 원본 2

2) 재단법인 大倉(오쿠라) 集古館(슈코칸) 기부행위에 관한 자료(제11회 고적조사위원회)

(1) 大倉(오쿠라) 集古館(슈코칸) 창립관련 문서 번역본

오쿠라 키하치로(大倉喜八郞)가 태어나 창대한 세상과 조우했고, 외람되이 작위를 수여받는 은명에 황송하여 감격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으므로 보답하려는 마음을 배로 하여 은연히 말하고자 한다. 다년간 수집진열 한 고기물건(古器物件)을 세간 사람들에게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이는 규모가 작다고 할지라도 도쿄에 하나의 박물장(박물관)을 늘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즐기게 함으로써 성화(聖化)의 은덕을 입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 그렇다고 한다면 바라건대 키하치로가 감은의 약소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족하지 않으므로 우측의 진열관 및 그 토지를 바치고 보존기금 약간을 더해 좌기(左記)의 여러 조항에 의해 이에 이 재단법인을 설립한다.

제1 목적
제1조

본 재단법인은 오쿠라 키하치로 수장의 미술품 또는 공예에 관한 물건을 이 진열장과 함께 유지보존하고 이것을 대중의 관람에 이용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 명칭
제2조

본 재단법인은 오쿠라 슈코칸(集古館)으로 칭한다.

제3 사무소
제3조

본 재단법인의 사무소는 도쿄시 아카사카구 아오이쵸(東京市 赤坂區 葵町) 3번지에 이를 둔다.

제4 자산
제4조

오쿠라 키하치로는 본 재단법인을 설립하기 때문에 그 소유에 속하는 좌기의 토지, 건물, 진열품과 기본금을 기부한다.

1. 토지의 표시
첨부목록 및 도면과 같다.
1. 건물의 표시
동상
1. 진열품의 표시
첨부목록과 같다.
1. 기본금
50만원
제5조

자산은 평의원회의 결의에 기초하여 이사가 이를 관리한다.

제6조

오쿠라 키하치로는 대정6년(1917) 12월 25일까지 기본금 50만원 전액을 불입하는 것으로 한다.

제7조

기본금은 국채증서 그 외의 확실한 유가증권으로 하고 그 보관을 일본은행에 위탁해야 한다.

제8조

본 재단법인의 경비는 전 조항의 국채증서 그 외의 확실한 유가증권의 이식금으로써 지변하고, 잉여가 있을 때는 그것을 적립금으로 삼아 임시 필요한 용도에 충당하는 것으로 한다.

제9조

본 재단법인의 회계연도는 매년 1월 1일을 시작으로 12월 31일 까지 마친다. 단, 초년 도는 설립 허가일부터 시작한다.

제10조

본 재단법인의 목적을 찬양하고 그 사업의 확장 또는 유지를 위해 금품을 기증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이사는 평의원회의 결의에 의해 그 기증을 받아들일 수 있다.

제11조

본 재단법인에 속하는 토지, 건물, 진열품 그 외 자산은 그것을 대장에 기재해야한다. 대장은 평의원회의 결의에 합당하면 그것을 변경할 수 있다. 자산대장은 등본을 만들어 감사가 그것을 보관해야 한다.

제12조

본 재단법인에 속하는 진열관(陳列館) 및 자산에 관한 관리규정은 별도로 그것을 정한다.

제5 역원(役員)
제13조

본 재단법인의 이사는 3명으로 한다.

제14조

본 재단법인의 감사는 2명을 둔다.

제15조

이사 및 감사의 임기는 5년으로 한다.

제16조

이사 및 감사의 임면은 평의원회의 결의에 의한다. 단, 이사는 평의원 중에서 선임하는 것으로 한다.

제17조

본 재단법인의 평의원은 10명을 둔다.

제18조

평의원의 선임은 평의원회의 결의에 의한다. 단, 오쿠라 남작가의 호주 및 그 추정 가독상속인은 당연히 본 재단법인의 평의원으로 삼는다.

제19조

평의원회는 매년도 말에 이사들을 소집하고, 임시소집은 필요할 때에 할 수 있다.

제20조

오쿠라 남작가의 호주 또는 평의원 5명 이상의 청구가 있을 때에 이사는 평의원회를 소집할 수 있다.

제21조

평의원회의 결의는 평의원의 과반수에 의한다.

제22조

평의원회는 예산결산 및 그 외의 중요한 사항을 결의한다.

제23조

평의원은 각자 본 재단법인의 재산 및 업무의 상황을 검사할 수 있다.

부칙
제24조

본 기부행위는 평의원 4/5이상의 결의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주무관청의 인가를 거쳐 이를 변경할 수 있다.

제25조

본 재단법인의 목적수행이 불가능하거나 그 외의 사유에 인해 해산하는 경우, 이사는 평의원회의 결의에 의거하여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어, 본 재단법인의 목적과 유사한 목적을 위해 그 잔여재산을 처분해야한다.

제26조

오쿠라 키하치로의 지명에 의해 본 재단법인 최초의 평의원은 자작 스에마츠 켄쵸(末松謙澄), 남작 이시구로 타다노리(石黑忠悳), 남작 시부자와 에이이치(渋沢栄一), 남작 사카타니 요시로(阪谷芳郞), 남작 호즈미 노부시게(穂積陳重), 마타노 타쿠(股野琢), 마코시 쿄헤이(馬越恭平), 오쿠라 쿠메마(大倉粂馬), 남작 오쿠라 키하치로(大倉喜八郞) 및 오쿠라 키시치로(大倉喜七郞)이다. 최초의 이사는 남작 사카타니 요시로(阪谷芳郞), 남작 오쿠라 키하치로(大倉喜八郞) 및 오쿠라 키시치로(大倉喜七郞). 최초의 감사는 무라이 키치베(村井吉兵衛) 및 다카시마 코킨지(高島小金治)로 한다. 단 이후 결원이 생길 때 선임은 제16조 및 제18조의 규정에 의한다.

제27조

본 기부행위 두 통 중에 한 통은 오쿠라 키하치로에게 그 후는 대대로 오쿠라 남작가의 호주에게 그것을 보관하게 하고, 다른 한 통은 평의원회의 결의에 의해 평의원 중 한 명에게 그것을 보관하게 한다. 오쿠라 키하치로는 앞의 각 조에 게재된 취지에 의거하여 직접 재단법인을 설립하기 때문에 이에 친족 및 친우를 설립증인으로 하고, 그 앞에서 이 기부행위 두 통을 제작하고 또한 아래의 관계자 각자 서명 날인을 하는 것으로 한다.

대정 6년(1917) 8월 15일 도쿄시 아카사카구 아오이쵸 3번지 남작 오쿠라 키하치로

입회인
추정가독상속인
오쿠라 키시치로(大倉喜七郞)
친족
다카시마 코킨지(高島小金治) 오쿠라 쿠메마(大倉粂馬)
우인(友人)
남작 이시구로 타다노리(石黑忠悳) 남작 시부자와 에이이치(渋沢栄一)

마무리

하세가와 총독에게 조선의 석탑을 자선당 옆에 세울 수 있도록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한 사카타니 요시로 남작은 오쿠라 키하치로의 지명으로 오쿠라재단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즉 사카타니는 오쿠라 키하치로의 후원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오쿠라 재단을 위해 조선총독에게 청탁을 넣었던 것이다. 오쿠라 재단이 조선총독부에 석탑의 양도 청탁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조선총독부청사의 토목공사를 담당하고 있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총독부청사는 직영공사 체제였으나 1차공사는 오쿠라조, 2차공사는 시미즈조 경성지점이 시공하였다. 건축공사가 진행될 때 많은 청탁이 오고간다는 점에서 오쿠라재단은 총독부 관리들에게 많은 뇌물을 제공하였을 것이고, 이를 통해 인맥을 쌓아 많은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처음 요구하였던 평양칠층탑도 사실상 주인 없는 탑이라는 정보에 따라 양도를 요구하였을 것인데, 총독부는 많은 사람들이 탑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민심이반을 우려하여 거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조선시정오주년기념 물산공진회에 시설품으로 옮겨와서 조선총독부 박물관 앞에 세웠던 이천오층석탑을 양도하겠다는 제의를 하여 오쿠라재단의 비위를 맞춰주려던 것이다. 오쿠라재단 측에서는 총독부의 조치가 성에 차지 않았겠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카타니가 남작의 작위를 받은 귀족이지만 일본천황에게 직접 보고하는 조선총독의 권력을 상대하기에는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쿠라재단에서 이를 수락함으로써 이천오층석탑의 양도가 진행되었다.